선생님의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에는 지적 환희와 외로움이 징검다리처럼 놓여 있었고요. 고백건대 생각하며 산다는 건 정말 괴로운 일이야. 나는 상대를 비방하려는게 아니라 납득이 안 가면 질문을 하는 본능을 따라 갔어. 그런데 질문을 받으면, 다들 자기를 무시하고 놀린다고 착각을 하는 거야. 그런 문화속에서 나는 사랑받지 못했네요. 존경은 받았으나 사랑은 못 받았어. 글을 쓰는 사람들, 한 치 더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고통을 격게 돼 있어.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내 머리로 생각한다네. 시간이 걸려도요?. 그럼. 모르는 시간을 음미하는 거야. 모르는 게 너무 많거든,
중력을 거스리고 물결을 거슬러라
다르게 산다는 건 외로운 거네. 그 외로움이 모든 사회 생활에 불리하지만, 그런 자발적 유페 속에서 시가 나오고 창조가 나오고 정의가 나오는 거지. 타성에 의한 움직임은 언젠가는 멈출 수 밖에 없다고. 작더라도 바람개비처럼 자기가 움직일 수 있는 자기만의 동력을 가지도록 하게. 생각이 곧 동력이라네. 생각하는 자는 지속적으로 중력을 거슬러야 해. 가벼워지면 떠올라야 하지, 떠오르면 시야가 넓어져. 생각이 날개를 달아주거든, 그래비티, 중력에 반대되는 힘, 경력이 생기지. 가벼워지는 힘이야. 그런 세계에서는 사실 '사회성'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아. 성공한 사람들... 뒤집어 보면 다 실패자들이야. 양면이 있는거야. 주체적 인간으로 인간의 운명을 어떻게 바꿔가느냐, 그 선택지 속에서 폭넓은 사고를 해야 해. 살아있는 것은 물결을 타고 흘러가지 않고 물결을 거슬러 올라간다네.
나의 오늘의 한 문장
질문하고 생각하고 삶을 주체적인 인간으로 삶을 개척해 나가는 것'의 중요성을 배웁니다. 매일 아침 책 한 페이지사진으로 문을 여는 분들이 봅니다. 그들의 시작은 독서로 하루를 엽니다. 참 대단하다고 생각합니다. 책을 통해서 보는 세상이 조금씩 즐거워집니다. 그동안 내가 알지 못했던 세상을 많이 알게 되었습니다. 이 기쁨을 가족과 공유하고 싶지만 아무도 관심갖지 않습니다. 그저 엄마의 권유이니까, '알았다'고만 하지 깊이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저도 잘 압니다. 그 만큼 알려주고 싶은 세상이 많다는 엄마의 간절함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나 혼자 꾸준히 합니다. 나 스스로 주체적인 존재가 되고자. 이어령 교수님이 말씀하신 '가벼워지는 생각세상속에서 살고 싶기때문에' 저 혼자라도 뚜벅 뚜벅 걸어갑니다.
이어령 교수님도 글쓰는 사람으로서의 외로움을 고백하셨습니다. 글을 쓴다는 것은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가져야 합니다. 가끔 글을 쓰고 싶지만 몸이 많이 피곤할 때 '내가 굳이 이걸 해야 하나?'하는 의문을 느낍니다. 예전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스스로의 구속을 통해서 글을 쓸 수 있고, 독서를 통해 생각이 자랄 수 있고, 자란 생각으로 나의 삶도 더 자유로워질 것을 알기에 계속해서 이 길을 가기로 결심합니다.
"내가 이 늦은 나이에 뭘하지?가 아니라. 이제라도 이것을 시작하게 되었으니 얼마나 행운아인가? 누구는 그저 봉사하는 일자리 찾고, 손자 손녀들의 재롱만을 애타게 기다리며 목적없이 삶을 살아가는데, 나는 목표가 생겼고, 목적이 생겼으니, 나이를 거스르고 있는 삶을 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행복한 인생인가!" 생각합니다. 이어령 교수의 말씀처럼, 늘 내 미래에 대해 질문을 합니다. 어떻게 해야지, 무엇을 해야지?'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집니다. 그리고 책 속에서 하나씩 그 해답을 찾아가고 있습니다.